청도 적천사 (淸道 磧川寺)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981
• 054-373-0307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행사찰인 적천사는 송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아늑한 오산(鰲山)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664년(문무왕 4)에 원효대사가 토굴로 창건하였다. 828년 흥덕왕 셋째아들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이 절에서 수도하여 진표대사로부터 법을 받고, 백련암, 옥련암, 목탁암, 운주암을 창건하는 등, 사찰을 크게 중창하였다. 1175년(고려 명종5)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는 절의 동북쪽에 영산전을 세워 오백 나한을 모셨을 때에는, 오백명의 대중들이 상주하며 수행하여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사찰의 왼편을 따라 산길을 5분 정도 따라가면 많은 부도들을 만날 수 있다. 보조국사가 심은 은행나무은 830여년 동안 높이 25~28m, 둘레 11m의 고목으로 자랐다.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나무는 보조국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도 한다.
주요전각으로는 대웅전, 명부전, 조사전, 적묵당, 무차루, 사천왕문 등이 있다. 적천사 대웅전은 1694년(조선 숙종20)에 태허선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단아한 곡선의 맞배지붕과 화려한 다포양식의 처마를 갖췄다. 앞에는 당간지주와 당간이 옥색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금새라도 법회를 알리는 깃발이 나부낄 듯 하다. 반면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적묵당은 날센 기품과 오랜세월 많은 선객을 배출한 덕스러움이 느껴진다.
주요 유물로는 관음괘불과 사천왕 좌상 4구 등이 있다. 적천사목조사천왕의좌상은 조선 숙종 때인 1690년 조성된 것인데, 높이 3~4m의 거상이면서도 균형된 자세에 세밀한 표현으로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적천사괘불탱화(보물 제1432호)는 1695년에 조성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1230에 세로 530cm이며, 관세음보살이 연꽃가지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연꽃대좌 위에 서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적천사에는 인각대사의 시(詩)가 전해온다.
"숲넘어 산에서 종소리 멀리 들려오니,
푸른 봉우리에 절이 있겠구나.
나무가 빽빽하여 문 비추는 달빛 가리고,
골짜기가 비어서 문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대답하네.
물은 흰 비단을 깔아 갖춘 돌에 흐르고,
무지개는 푸른 비단을 끌어다 고송에 걸렸네.
늙은이 며칠 머무름을 괴이타 마라.
그 옛날 보조국사가 유적을 보였네."
* 664년 원효대사 창건.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淸道 磧川寺 銀杏나무)
• 천연기념물 제402호
• 지정일 : 1998.12.23
•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월곡안길 28-293
• 소유저 : 적천사 외
• 관리자 : 청도군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5.5m, 둘레 8.7m의 크기로 3m 위치까지 한 줄기이며 그 위부터는 3개의 가지로 나누어졌다. 맹아 및 유주가 유난히 발달했는데, 맹아는 새로 난 싹을 말하며, 유주는 가지 사이에 혹 또는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가지를 말한다. 유주는 일종의 뿌리가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5년(1175)에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유주 발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