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 7천년의 수수께끼 -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 남단. 부산의 가덕도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골 48개체가 발견되었다.
7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주인공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에 대한 DNA 검사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한국 사람에게 전혀 없는 DNA를 가진 인골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디서 온 것일까?
경상남도 남해의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남해와 낙동강 하구가 만나는 곳에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가 보인다.
2011년 초, 이곳에서는 부산에 신항만 공사를 위한 기반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공사장에서는 다량의 신석기시대 유물과 인골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된 유물들은 놀라웠다.
신석기시대 전기 약 7천 년 전의 고인골 48개체가 발굴됐고, 옥제품을 비롯한 조개껍질 장신구들은 7천 년 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고인골 48개체의 발굴은 우리나라의 산성토질 특성상 놀라운 일이다.
보통은 산화돼 형태가 보존되기 어려운데 가덕도 인골들은 달랐다.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수확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가덕도 신석기시대 장항유적지. 멀리 부산신항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인골 출토된 게 전부 합쳐서 20기정도 나왔는데, 여기에서만 50기가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국의 신석기시대 인골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골이 나왔고, 당시 사람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는 것을 정말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 그렇게 나타난 거죠.
(정의도 원장, 한국문물연구원)

매장방식 : 각각 이미지의 왼쪽은 신전장, 오른쪽은 굴장.
가덕도 유적에서 또 다른 수확은 토기다. 파편조각이 아니라 완벽한 모양을 갖춘 토기가 발견된 것이다.
완형 토기들은 토기의 문양과 제작방법에 있어서 신석기시대에 많은 변천이 있어 왔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인골들의 매장방식이다. 48개체의 인골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묻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두고 두 다리를 곧게 뻗은 매장법은 신전장이다. 또 다른 매장법은 굴장이다.
굴장은 팔 다리를 구부린 채 하반신을 상반신에 붙여 옆으로 묻는 매장방식을 뜻한다. 마치 태아의 자세와 비슷하다.
신전장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매장방식이지만 굴장은 매우 보기 드문 매장법이다.
그런데 가덕도에서는 신전장보다 굴장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약 7천 년 전 이 가덕도에서 나온 굴장. 그야말로 우리가 보통 말할 때 강하게 굴장되어 있다.
그래서 강굴이라고 표현합니다만은 마치 사람을 염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렇게 자세가 나오지 않는 사지를 굉장히 구부려서 마치 이렇게 끈 같은 것으로 묶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매장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때까지 한국에서는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것이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이 확인된 장법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죠.
(김재현 교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7천 년 전 가덕도의 주인으로 살다가 각기 다른 매장방식으로 묻힌 인골들.
이들은 우리의 조상일까? 아니면 누구일까?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여름.
국립현충원의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에서는 유해들의 분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시신 중에서 미군의 유해를 찾아내는 조사였다. 유해들은 유품을 통해 1차 신원확인을 한다.
유품이 없을 경우엔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미국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에서 일하는 진주현 박사는 미군 유해를 찾아서 미국 내 가족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한다.
그녀가 유해확인 과정에서 가장 유심히 살피는 것은 인골의 얼굴뼈다.
머리뼈 중에서도 얼굴뼈가 인종을 구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몸집 같은 경우는 인종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운동을 얼마나 했느냐 혹은 무엇을 먹었느냐 이런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얼굴뼈는 그렇지 않거든요.
얼굴뼈 같은 경우는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종구분 하는데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진주현 박사, JPAC, 미국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
특히 얼굴뼈의 길이나 턱의 발달 정도, 코뼈의 높낮이 같은 것은 인종구분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들도 얼굴뼈를 이용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가덕도 장항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팀에서 인골의 얼굴뼈를 살펴보기 위해서
인골에 붙은 흙을 분리해보았다. 하지만 뼈보다 더 단단해진 흙 때문에 뼈를 제대로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의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성능 3D 스캔을 해봤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뼈의 온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의 머리뼈로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번엔 컴퓨터 단층촬영을 이용해봤다.
단층촬영은 X선을 비춰 나타난 조직의 흡수율 차이를 계산해 물체의 단면도를 그리는 것이다.
가덕도 33호 인골의 경우, 뼈보다 단단해진 흙 때문에 흡수율 차이를 구할 수 있어서 분석이 가능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 부분이 단층촬영으로 밝혀낸 뼈의 조직이다.
촬영된 머리뼈는 머리뼈 복원 전문가인 서울대 이원준 박사에 의해 복원이 이루어졌다.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촬영된 얼굴뼈에서 흙을 제거하고 뼈로 추정되는 영상만 모아봤다.
그러자 서서히 머리뼈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가덕도 33호 인골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현대 한국인과는 다른 긴 머리뼈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특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인제 그 긴 머리뼈 형태는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보다는 서양인에서 보여지는 머리뼈의 형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원준 박사,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굴장으로 매장된 가덕도 33호 인골 외에 두 개체의 인골도 서양인과 유사한 머리뼈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유전자는 어떨까? 중앙대학교 이광호 교수팀은 인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고인골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불순물에 오염되지 않은 뼈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출토 고인골들은 고대 한반도의 토양이나 기후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의 고인골들과 비교해서 볼 때 DNA 손상 정도가 가장 심해서 DNA 분석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에서 발굴된 48개체 인골 중에서 분석이 가능한 것은 17개체였다.
그것들을 1차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일부 인골에서 유럽계 모계 유전자가 검출됐다.
가덕도 고인골들 중 일부는 동양계, 일부는 유럽계의 모계 유전자형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추후 나머지 고인골들에 대한 반복적 모계, 부계 DNA 염기서열 분석하고, 다른 연구 그룹에 의한 가덕도 고인골 DNA 분석결과와의 비교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저의 결과에 신뢰도를 높일 예정입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 고인골은 유럽계 모계 유전자 그 중에서도 H형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골의 정체를 밝힌 모계 유전자는 무엇인가?
1900년 미국 영토가 된 하와이에는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동양인, 유럽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지만 그들의 출발은 20만 년 전 한 어머니로부터였다.
1987년 네베카 칸 교수는 미국 내 거주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인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의 탯줄을 조사했다.
그 탯줄에서 모계 유전자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해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유전병을 확인하려다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
오로지 어머니에게서 아이에게로 유전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수백 명의 조상을 살펴보는 대신 단일하고 끊이지 않는 여자 조상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그녀가 발표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약 70억 명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한 여성을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추론되는 이 여성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보았다.
매우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20만 년보다 더 이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 출신이든지 궁극적으로는 까마득히 오래된 매우 특별한 아프리카인 할머니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지구상엔 서로 다른 환경에서 7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한 여성에게서 시작된 공통의 유전자를 지녔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그 여성의 자손들은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서 아시아인과 유럽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현생인류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수많은 돌연변이를 거쳐 지금과 같이 여러 유전 집단으로 분화된 것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떻게 여성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것일까?
서울 노원고등학교 과학반 수업시간.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다.
사람의 유전정보는 두 곳에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은 세포 내 핵에 있지만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도 조금 존재한다.
하나의 세포질 안에는 세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수백여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그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와는 독립적인 유전자를 갖는데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이다.
그런데 그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로만 유전이 된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로 전달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남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꼬리에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하는 순간 정자의 꼬리가 떨어지면서 아버지쪽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사라진다.
하지만 난자쪽에 있는 어머니쪽 미토콘드리아는 남아있어서 자녀에게 계속 전해진다.
남녀 모두 각자의 어머니로부터 유전자를 받지만 난자를 갖고 있는 여성만 다음 세대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전달하기 때문에 모계 기원을 연구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여성들은 어떤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을까?
누가 봐도 대한민국 20대 여성인 10명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개인에게 동의를 받고 이들의 DNA를 조사해봤다.
DNA는 입안의 점막이나 침, 혈액, 머리카락 등 세포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 결과는 의외로 다양했다.
열 명은 여섯 개의 모계 유전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불과 10명을 갖고 조사했는데도 여섯 개의 다른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몇 개의 모계 유전자형으로 나뉘어 있을까? 10명의 여성들보다 더 다양할까?
단국대학교의 김욱 교수는 국내 6개 지역이 한국인 708명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서 D4, B4, F, M7 등 다양한 모계 유전자형이 발견됐다.
한국인 집단은 여러 계통의 집단이 시기적으로 다르게 한반도 내로 유입돼서 어느 시기부터는 동질성을 가지고 한반도와 만주 내에서 한국인 집단끼리 주로 결혼하고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적어도 여덟 개 내지 아홉 개의 서로 다른 계통이 우리 한국인을 이룬 계통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욱 교수, 단국대학교 생명과학과)
그러나 김욱 교수의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포함해 그 어떤 모계 유전자 조사에서도 H형의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가덕도의 7천 년 전 인골은 누구의 것일까?
|